일을 시작한지 4년.

Diary 2011.08.14 17:45


29살까지는 무엇을 해야지. 30살에는 무엇을 해야지.
아귀같이 살다보니 생각보다 빨리 이뤄낸 것이 생겼다.
몇 달전의 나만 해도 거침없이 써갈겨대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글 한 줄을 더 받고싶었을지 모르나
사는 게 하 수상한 이 때
타인보다 미래의 내게 자괴감을 줄까 겁이나 쓸 수가 없고
숫자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요즈음 참 자판기커피에 담배꽁초 담긴 것보다 못한 글같아 저어함이
아직 나는 나이 드는 하루가 달콤하구나.

미래에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많을 것 같아 불안하지만
어쨌든 한번 찍어보았더니 생각보다 그것.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
숫자가 하나 더 느는 것이
제 잘난 맛에 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굴러가주고, 운이 좋아 그러함이라는 걸 알아서
다행이다.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려본다.
다르게 알았다면 나는 더 천박해졌을테고
누군가는 도덕이 정신병적 강박이라 폄하했지만
나는 내가 미친 것을 알기에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이제 연말이 되면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한다.
나는 따뜻한 가정의 무지랭이같은 여자가 되었으면 했다.
남편은 지젝이니 바우어니 하는 것을 읊어주거나
내가 생전 듣도보도 못한 경제학이니 정치이야기니를
무릎 베고 누은 내 머리위에서 낮은 목소리로 읊어주었으면 했다.
알든 모르든 나는 즐거웠으리라.
원래 지식은 백치가 들어야 재미있는 법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가 되어 병신같이 살고자 했는데

아주 잘난 남자 친구 덕에 까막눈이 되어도 행복했던 학부시절
칸트를 전공하신 은사님이 내 눈을 까맣게 들여다보며 그러하셨다.
'너는 나갈 사람이지.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올 필요가 있는.'
올해 1월. 또 다른 은사님은
'그 분이 그렇게 말씀하신 건, 뭔가를 보셨기 때문이야.'
이제 내 곁에는 가지말라 잡는 사람도 하나 없으니
회피하고싶어 그 때 그 말이 떠오르나 고민만 늘고
우둔한 내 머리는 오늘도 하염없이 굴러만 가는데.

어느 길이 옳은지는.
아마 나는 결정하는 그 순간에도 알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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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옆집누나 Ran